그루터기

기억 소환

해피1614 2022. 8. 13. 04:45

세브란스 병원에 다녀 왔다.

폭우에 희생된 사람들 보면서 대자연 앞에선 우린 정말 나약한 존재임을 확인했었는데...

3년전 6촌 여동생 며느리 보는 잔칫날만 해도 너무나 건강한 모습이셨는데

링거줄, 알 수 없는 약줄을 코와 팔에  주렁주렁 달고 의식 없이  누워 계셨다.

폐암 말기

올해로 76세 된 해피 종숙모 이야기이다.

 

40여년전

우리집 가까이 사셨던 숙모는 해피 학창시절 맡겨 놓은 금고였었다.

부모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도 항상 웃으며  수용해 주셨다.

모자란 용돈, 데이트비용, 어려운 사정이야기...

툭 하면 가서 빌려서 쓰고 쓰잘데 없는 이야기 떠벌리고 했었다.

나만 가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 지으시며

오늘은 또 무슨 일인고 하시며  한날 한시 같이 반겨 주셨던 분.

아르바이트 해서 꼭 갚기는 했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의 목마름을 쉬임없이 적셔 주셨던 분이셨다.

그후

결혼이란 굴레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집안 행사때나 얼굴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가슴속 깊이 고마움으로 남아 있어서 명절때 잊지 않고 선물 보내는 걸로 위안 삼았다.

참 선하고 생보살 같은 숙모이셨다.

 

이젠

병원에선 더할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의사아들들도 속수무책으로 바라다 볼 뿐...

손잡아 보아도

불러 보아도

허공에 퍼지는 메아리 일뿐이다.

마지막 모습이 될것 같아 보고 또 보고 했다.

시야에 안개가 끼이고 가슴이 먹먹하였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에 왔지만 

쉽사리 잠오지 않는 밤이다.

예전 일이 파노라마 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고 또 다닌다.

부처님께 간구드렸다.

가시는 길의  무사평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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